집단트라우마란 특정 집단이 재난, 전쟁, 대량 학살 등 강렬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면서 함께 겪는 심리적 상처를 의미한다. 사회적 집단트라우마는 그 충격이 개인의 심리를 넘어 사회 전체의 분위기와 관계망에 영향을 미치며, 때로는 세대를 초월해 전이되기도 한다.
사회적 집단트라우마는 개개인의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 증상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증상들은 때로는 명확히 드러나지만, 때로는 미묘하게 지속되며 삶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
◇심리적 증상
1. 불안감과 공포 : 재난 사고 이후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재난과 관련된 장소나 상황에 대해 극도의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무안 항공기 추락 사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항공기 타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게 됐다.
2. 우울증 : 집단트라우마는 개인이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끼게 만들어 장기적인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반복적으로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뉴스나 이야기는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3.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 재난 사고와 관련된 플래시백(flashback), 악몽, 회피 행동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세월호 생존 학생들처럼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에서 심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사례가 많다.
4. 집중력 저하와 기억력 문제 : 트라우마는 뇌의 기능에 영향을 미쳐 집중하거나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할 수 있다.
◇신체적 증상
1. 수면 장애 : 악몽이나 과도한 경계심으로 인해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 만성 피로 :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불안은 신체적 피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일상생활에서의 활력과 동기 부여를 떨어뜨린다.
3. 심혈관계 문제 :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면서 심박수 증가, 고혈압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4. 소화기 장애 : 스트레스는 소화불량, 복통, 위장 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사회적 증상
1. 사회적 고립 :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하거나 신뢰를 잃게 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는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적 반응에서 비롯된다.
2. 공동체 신뢰 저하 : 집단적으로 재난을 경험한 경우, 정부나 관리 기관에 대한 불신이 심화돼 사회적 연대가 약화될 수 있다.
3. 갈등 증가 : 트라우마는 개인 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사회적 긴장을 조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와 국민 간의 불신은 더욱 심화됐다.
집단트라우마는 심리적 접근뿐만 아니라 의학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치료는 주로 정신건강 전문가의 지도 아래 약물 요법과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약물 치료
1. 항우울제 및 항불안제 : 불안증과 우울증을 완화하기 위해 사용된다. 약물 치료는 트라우마로 인해 과도하게 활성화된 뇌의 신경 회로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2. 수면제 : 수면 장애를 겪는 환자들에게 적절한 수면을 돕기 위해 처방된다.
◇심리치료
1. 인지행동치료(CBT) : 부정적인 사고 패턴을 식별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춘다.
2. 안구운동 둔감화 및 재처리(EMDR) : 외상 기억을 처리하고 증상을 경감시키는 데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PTSD 환자들에게 주로 사용된다.
3. 집단 치료 :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 간의 연대를 통해 상호 이해와 치유를 돕는다.
박지훈 서울 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집단트라우마를 겪은 환자들은 자신만의 고통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현상이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약물 치료와 심리치료는 환자들의 일상 복귀를 돕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EMDR은 외상 기억을 다루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또한 박교수는 “집단 트라우마 치료는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사회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집단트라우마는 심리적, 사회적, 제도적 차원에서 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김정은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 트라우마는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치유되지 않는다. 피해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민호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또한 “트라우마는 우리 삶에 깊은 흔적을 남기지만, 이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마주하고, 공동체의 힘을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 트라우마의 경우 피해자들뿐 아니라 주변인들과의 연결이 회복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말했다.
1. 공감과 애도의 문화 조성
집단트라우마 극복의 첫걸음은 피해자들과 사회가 서로 공감하며 애도를 나누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개인적인 고통이 사회적 차원에서 위로받을 수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촛불집회와 같은 형태로 나타난 공감의 연대는 사회적 치유의 긍정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2. 전문가의 개입과 상담 지원
재난 이후 심리 상담과 치료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이들에게도 필수적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피해자들에게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고, 심리학자와 사회복지사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3. 안전에 대한 신뢰 회복
반복되는 재난 사고는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철저한 재난 대비와 안전 관리를 통해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시청역 역주행 사건 이후 개선된 도로관리 시스템은 이러한 노력의 사례가 될 수 있다.
4. 사회적 기억과 교육
사회적 트라우마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도 중요하다. 사건을 기념하거나 이를 교육의 일부로 활용하면, 후대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독일의 홀로코스트 기념비와 같이, 세월호를 기념하는 기억공간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
5.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이태원 참사 이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이 일부 지역에서 시행되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회복하며, 트라우마로부터 점진적으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사회적 집단트라우마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겪는 고통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 사회적 차원의 연대와 치유가 필요하다. 트라우마는 저절로 치유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치유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지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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