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화병(火病)은 사실 중년 여성들에게 매우 흔한 질병이었다. 즉, 결혼 이후 고된 시집살이를 하면서 억울하고 분하고 속상한 일들이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다가 보통 갱년기(완경기) 시기에 몸과 마음의 기운이 떨어지고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과 같은 우울증 양상과 겹치면서, 수 십 년간 축적된 화(축적된 화를 흔히 ‘울화(鬱火)’라고 한다)를 통제하지 못하면서 발생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대한민국 10~30대의 젊은 연령에서 ‘화병(울화병)’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 조사에 따르면, 2014~2018년 사이에 화병(火病)으로 한의원이나 병원을 방문한 환자 중에서 40대 이상의 환자는 1만779명에서 1만65명으로 약간 감소한 반면, 30대 이하 젊은이들은 2585명에서 4078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10대 화병(火病) 환자 역시 312명에서 653명으로 2배 넘게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필자 역시 매일 소아청소년을 진료하다 보면, 너무나 급작스러운 공격적 행동 양상 때문에, 우리 집 천사가 악마로 돌변했다고 호소하며 매우 당황하는 부모님들을 굉장히 많이 만난다. 이때 한의학에서는 '억간산(抑肝散)'이라는 한약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다. ‘억간산(抑肝散)’은 조구등(釣鉤藤), 백출(白朮), 백복령(白茯苓), 당귀(當歸), 천궁(川芎), 시호(柴胡), 감초(甘草) 등 총 7가지 약재로 구성된 한약으로, 다양한 10대 소아청소년과 20대 청년들의 신경정신과적 장애에 오랫동안 널리 활용돼 왔다. 또 현대과학적으로도 이미 학술적 검증까지 모두 마쳤다는 특징이 있다.
‘억간산(抑肝散)’은 중국 명나라(1555년) 때 유명한 황실 어의였던 설개(薛鎧)·설기(薛己)가 공동 집필한 한방소아청소년과 전문 의학 서적인 ‘보영촬요(保嬰撮要)’에 처음 등장하는 한약 처방인데, '자모동복(子母同服)'이라고 해 '엄마와 아이가 가급적 같이 복용하는 것이 더욱 좋겠다'라고 기재돼 있다. 약리학적 작용 기전으로는 글루타민산 신경계, 세로토닌 신경계의 작용에 관한 현대과학적인 논문 보고가 이미 2000년대 이후 널리 알려지게 됐다.
억간산에 의한 공격성 억제 및 항불안 작용, 항산화 작용 및 항염증 작용에 의한 '뇌보호 효과(neuroprotection effect)'도 최근 많은 현대과학적 논문을 통해 학계에 이미 보고됐다. 특히 억간산(抑肝散)의 '항스트레스 효과'를 입증하는 논문이 2017년 3월에 일본에서 발표됐는데, 정신적 스트레스와 관련된 신경단백인 오렉신(orexin) 분비를 억간산(抑肝散)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감소시킨다는 사실이 현대과학적으로 잘 확인되기도 했다.
더군다나 2017년 4월에는 억간산(抑肝散)의 '사회성 개선 효과'를 입증하는 논문도 일본에서 발표됐는데, 사회적 고립에 의해서 발생되는 신경발달장애·행동장애 실험 모델에서 억간산(抑肝散)이 사회성 개선 효과 및 주의력 개선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현대과학적 논문을 통해 명백히 밝혀진 억간산(抑肝散)의 임상적 약리 작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항스트레스 및 항우울 효과
2. 통증 완화 효과
3. 공격 행동 개선 효과
4. 항불안 효과
5. 항아토피 효과
가족들조차 감당하기 힘든 10대 소아청소년과 20대 청년 시기의 화병을 포함한 스트레스 질환이 나타났을 때에는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가까 의료기관에 내원하거나 비대면 진료를 받는 게 좋다. 이를 통해 체질적 편향성과 병증의 심각도 등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10대 소아청소년과 20대 청년의 정신적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음식들도 섭취하는 게 좋다. 대표적으로 카레, 시금치, 아스파라거스, 고구마, 흑임자 등이 있다.
카레의 주원료인 강황(薑黄)은, 한의학은 물론,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에서도 3000년 이상 매우 중요한 한약재로 사용됐다. 카레에 들어있는 커큐민(curcumin)은 스트레스에 대항하고 뇌의 주요 부위를 보호하는 작용을 한다. 마그네슘이 풍부해 긴장으로 인한 두통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시금치, 엽산이 풍부해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 효능이 있는 아스파라거스, 식이섬유·베타카로틴·비타민이 많아 포만감이 크고 스트레스를 감소시켜주는 고구마 등을 함께 넣고 카레를 만들어 먹으면 일석이조다.
흑임자에 함유된 레시틴(lecithin)은 뇌 신경세포의 활동을 활성화시켜 주고 기억력을 높여주며 순발력을 빠르게 하여 두뇌 회전을 돕는다. 머리를 많이 쓰는 학생이나 직장인은 레시틴을 소모하는 속도도 빠르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데, 흑임자를 꾸준히 섭취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글 : 황만기 황만기키본한의원 원장)
임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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