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최근 주 4일 근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스가 지난 7월 일부 고용주에게 주 6일 근무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과 삼성이 자사 경영진에게 주 6일 근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일례로 보도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따르면, 2021년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과로의 건강 위험'에 관한 논문에서 2016년 주 5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뇌졸중과 심장병을 유발해 74만5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0년에 비해 29% 증가한 수치다.
프랑스 앙제대학병원과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의 알렉시스 데스카타 연구원은 “과로사가 세계 1위 직업병이라는 것은 충분한 데이터에 의해 입증됐다”고 말했다. 연구에 따르면 오랫동안 일과 삶의 균형의 표준으로 인정을 받아온 주 40시간 근무조차도 한때 생각했던 것만큼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직·간접적 미치는 영향
과로는 직간접적으로 건강에 해를 끼친다. 장시간 노동에 따른 스트레스는 몸을 항상 '투쟁 아니면 도피' 상태로 만들어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높이고, 혈당 수치에 영향을 미치며, 면역 체계에 변화를 일으킨다.
이 같은 스트레스가 만성화되면 고혈압, 두통, 불안, 우울증, 소화기 질환, 심장병, 심장마비, 뇌졸중, 수면 장애 등 수많은 건강 문제로 이어진다.
장시간 노동은 또한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이는 사람이 건강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기 때문이다.
데스카타 연구원은“과도하게 일하면 수면, 식사, 운동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다”면서 "산책이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 여가 활동 대신 일을 하게 되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더욱 커진다"고 설명했다.
WHO와 ILO가 최근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서태평양과 동남아시아에서 과로와 관련된 사망자 대부분은 젊은 시절부터 주당 55시간 이상 일한 60세 이상의 남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블루밍턴 공중보건대학의 그레이스 센바지웨 연구원은 “과로의 현저한 영향은 10년 정도 지난 후에 나타난다”고 말했다. 일례로 스트레스가 많은 프로젝트 마무리 작업과 같이 짧은 기간 동안만 장시간 일하는 경우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고, 장시간 노동을 중단하면 완화될 수 있다.
센바지웨 연구원은 "주 55시간 이상 근무하는 근로자에게 가장 큰 영향이 나타나지만,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며 “건강의 관점에서 볼 때 주 40시간도 그다지 이상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연구에 따르면 주당 근로시간을 줄이면 삶의 질이 향상되고 수면이 개선되며, 스트레스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일부 국가에서는 주당 노동시간을 줄이고 휴가를 늘리는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곳으로 아이슬란드는 근로자의 86%가 주 4일 근무를 하고 있으며, 덴마크는 주당 37시간의 근무시간을 공식적으로 정하고 연간 5주간의 휴가를 의무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오래 앉아 있을수록 위험이 커진다
미국 노동 통계청에 따르면 일반 근로자는 하루 평균 3.46시간을 앉아서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무직의 경우 이 수치는 하루 8~10시간에 이르기도 하지만 육체노동자의 경우 하루 1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장시간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은 사무직 근로자에게 장기적인 영향을 미쳐 고혈압, 제2형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 발병 위험을 높인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위험은 증가한다.
전문가들은 "근무 시간이 길어지면 앉아있는 시간도 길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많이 앉아 있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일랜드의 리머릭 대학교에서 '앉아 있는 시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에이단 버페이 연구원에 따르면 그 기준은 하루 8~10시간 정도다. 앉아있는 시간이 11시간을 넘으면 건강 위험은 더욱 높아진다.
업무 외에도 여가 시간에 TV 시청 등 몸을 움직이지 않는 활동을 하는 사람의 경우, 앉아있는 시간이 하루 8시간을 훌쩍 넘는다.
여기에 매일 장시간 앉아있는 직장인은 목과 허리 통증과 같은 특정 과사용 장애를 겪을 위험이 높다.
이 같은 건강 문제는 운동으로 상쇄할 수 있다. 일주일에 평균 150~300분 운동하는 사람은 분명히 위험이 낮아진다. 또한, 몇 분간 걷거나 서서 일하는 책상으로 이동하는 등 하루 종일 의자를 떠나는 시간을 조금씩 마련하는 것도 악영향을 줄일 수 있다.
'여가냐 일이냐'...'신체활동의 역설' 문제
그러나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의 경우 운동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경우가 있다. 여가 시간에 신체 활동을 늘리면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되는 반면, 업무의 일환으로 신체 활동을 늘리면 심혈관 질환의 위험이 높아진다. 이를 '신체활동의 역설'이라고 말한다.
이 역설이 발생하는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 가지 가능성은 여가시간과 달리 직장에서는 신체활동의 길이와 강도를 조절할 수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해 버페이 연구원은 “신체가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태에 놓여있다는 뜻"이라면서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몸이 회복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성 스트레스의 영향은 균형 잡힌 식사를 하지 못하거나 수면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등 다른 생활습관 요인으로 인해 더욱 커질 수 있다.
반면 눈길을 끄는 것은 엘리트 운동선수들은 높은 수준의 신체 활동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하지 않을 때는 휴식, 회복, 양질의 영양 섭취를 우선 순위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 환경' 업무 유연성과 관계
노동 환경은 장시간 노동의 스트레스를 증가 시킬 수도 있고, 건강상의 위험을 상쇄 시킬 수도 있다.
연구에 따르면 작업 속도와 책임의 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등 자신의 작업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근로자는 그렇지 않은 근로자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심장병 위험 감소와 같은 건강 상태의 개선으로 이어진다.
가정생활의 편의를 포함해 필요에 따라 업무 일정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근로자는 그렇지 않은 근로자에 비해 정신적으로 더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매주 같은 시간만큼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미국 아칸소 의과대학의 펄 맥켈피쉬 연구원은 “근무시간이나 유급휴가와는 무관하게 업무 유연성 자체가 우울증과 불안과 음의 상관관계가 있다”면서 “업무 유연성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불안과 우울증이 적다"고 설명했다.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일하는 경우, 주당 근무시간을 더 짧고 유연하게 만드는 것은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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