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이 바람직한지 아닌지를 떠나 이러한 기대와 희망 때문에 대다수의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자녀 선수에 대해 경제적, 심리적, 그리고 교육적으로 그야말로 올인 한다. 이로 인해 학교 운동부는 최저학력제, 합숙소 폐지, 지도자와 학부모 간 갈등, 운동부 폐지 등의 심각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극심한 대립과 좌절에 빠져 버린다. 프로 종목인 축구, 야구, 골프를 제외하고 또 다른 프로 종목인 농구, 배구를 포함해 올림픽 효자 종목이었던 레슬링, 유도, 복싱, 하키, 핸드볼 등 거의 전 종목에서 학생선수들과 팀 수가 이미 반 토막 난 지 오래지만 학교 운동부 문제는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학령 인구 감소 탓으로 돌리기에 너무 무력할 정도로 학교 운동부는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심하게 말해 타살이 아니라 자살 직전에 놓여 있다. 대안으로 학교 밖 스포츠클럽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축구나 농구 등 극히 일부 종목을 제외하고 한국 사회에서 지역사회의 스포츠클럽이 학교 운동부의 미래 대안일 것으로 판단하는 체육 전문가는 거의 없다.
학교 운동부는 공교육 영역인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 근본적인 두 가지 물음에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 우리는 점점 수렁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학교 울타리 내에 있는 학교 운동부는 분명히 공교육 형태를 띠고 있지만 학부모들이 지금과 같이 지도자의 인건비로부터 선수들의 훈련비, 대회 출전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은 절대 공교육이 아니다. 마치 학부모들이 학교 운영위원회에 경비를 납부하고 국어, 영어, 수학강사를 모셔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교육의 전형적인 형태인 셈이다. 모든 학교 운동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축구, 야구를 비롯해 상당수 종목의 초, 중, 고 운동부가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고 자녀의 운동권이나 상위 입상을 저해하고 방해하는 일체의 교육 활동은 거부되거나 극심한 갈등에 부딪힌다. 또한 학교 운동부의 이런 내막을 알고 있는 다른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학교 운동부로의 발걸음을 주저하거나 아예 얼씬도 안한다. 교장선생님 같은 학교 운영자들도 운동부에 대해 특별한 의식이 없을 경우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상황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학교 운동부의 그 훌륭한 교육 기능이 온전히 무시된 채 학부모들이 경비 일체를 지원하면서 학생들은 운동에만 집중해야 하는 이런 기형을 방치할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학부모들의 기대와 달리 자녀 선수들 중 불과 10% 이내만이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데도 이런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학교 운동부가 공교육인지 아닌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종결해야 한다고 본다. 아니 공교육의 책무임을 재천명해야 한다. 그리하여 공교육 활동답게 지도자의 인건비로부터 훈련비 등을 정부가 각별히 지원해야 한다. 수혜자 부담 원칙이라는 탁상행정으로 학부모에게 손 벌리는 일은 이제 멈춰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미 각급 교육청과 체육회에서 지도자 인건비를 지출하고 있는 만큼 문체부에서 지원 대상과 수준을 좀 더 확대하여 향후 공적 차원에서 학교 운동부를 재정립하도록 도와야 한다. 문체부의 예산 증액이 결코 쉽지 않은 만큼 스포츠토토와 같은 국민체육 진흥 투표권의 판매 총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서 학교 운동부에 집중 투입하면 좋겠다. 그와 함께 지역사회의 기업들이 학교 운동부나 청소년 스포츠클럽을 적극 지원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을 과감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경우 학교 운동부 지도자들을 3년 이상 무기직으로 임용하여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만일에 지도자 처우가 현재보다 아주 낮아질 경우 당분간 투 트랙을 운용하여 좀 적은 급료지만 정년을 보장받을 것인지, 아니면 현재와 같이 1년 계약직으로 학부모의 지원에 의존할 것인지를 지도자 스스로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학교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과 같은 모습은 학부모나 학교, 그리고 지도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운동에 재능 있거나 관심 있는 학생들의 진입 장벽만 높일 뿐이다.
그리고 학교 운동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우리는 냉정히 살펴야 한다. 두말할 것 없이 정답은 학생선수들이다. 만일에 한 예로 학생선수들이 최저학력제를 그토록 부담스러워하거나 거부한다면 어른들은 진지하게 이 제도의 시행을 재검토해야 한다. 운동만 해서는 장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학생선수들을 위해 최소한의 소양 교육을 시키려던 교육자들의 의도가 대학과 달리 출석률이나 보고서 등이 무시된 채 시험 성적이라는 학업 결과만을 근거로 하는 최저학력제에 대해 수많은 지도자, 선수, 학부모들이 그토록 반대한다면 한 학기 유예가 아니라 전면 재고해야 한다고 본다. 취지에 걸맞은 대안을 진지하게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운동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오후 운동권을 좀 더 전향적으로 보장해 주는 건 어떨까 싶다. 본인이 단국대학교 교수 시절 체육위뭔장과 운동선수들로 구성된 학과의 학과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모든 운동선수들은 오전에 강의, 오후에 운동에 집중하도록 교육과정을 편성하였다. 오후 운동은 모두 학점제로 운영하였는데 운동부 감독들을 담당 교수로 위촉하여 이들이 해당 종목의 선수들 학점을 부여하도록 하였다. 대학 선수들의 소양교육은 물론 운동시간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한 이 교육과정은 현재도 아주 잘 운영되고 있다. 중고 학생선수들의 일부가 오후 운동시간이 부족하여 학교를 자퇴하고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하거나 아예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하는데 학생선수들을 위해 단국대학교의 이런 사례를 참고해 보는 것도 어떨까 싶다.
또 다른 갈등 요소로서 합숙소 문제도 학생선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풀어야 한다. 교내 합숙소를 폐지한 덕에 교외 합숙소가 버젓이 운영되는 상황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학부모 부담, 더 많은 일탈 가능성이 잠재해 있음에도 얼마나 더 큰 사고가 나야 학생선수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지 늘 아슬아슬하다. 원할 경우 일반학생들과 학생선수들이 교내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제도를 중고등학교 현장에 하루빨리 안착시켜야 한다.
학령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고, 초등학교까지는 운동에 집중하던 학생들도 중학교에 진학하면 운동을 중단하는 현실을 개선하려면 학교 운동부에 대한 패러다임을 크게 바꿔야 한다. 운동이냐 공부냐를 극단적으로 강요하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한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학교 운동부는 참된 인간 교육의 현장으로 바뀌어야 한다. 운동부 활동이 자녀의 인생에 도움을 준다는 인식이 확산될 때 학부모는 자녀의 손을 잡고 운동부를 찾을 것이다. 동네 태권도장과 줄넘기 학원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선수 만들려고 보내지 않는다. 미래의 국가대표 선수, 프로선수를 만들기도 하지만 예의 바르고 반듯한 청소년을 키우는데 학교 운동부가 크게 도움이 된다면 운동선수 모집 시 학부모들은 날밤을 새울 것이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점차 늘어나고 있는 마약, 섹스, 폭력으로부터 학교 운동부가 자녀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보호하는지를 알게 되면 학부모들은 앞다투어 운동부실을 찾을 것이다. 야구부, 레슬링부, 핸드볼부, 스키부에 50명, 혹은 100명의 선수가 있으면 무엇이 문제가 되나? 그들 중에서 기능과 체력이 좀더 뛰어난 학생들은 운동선수로의 길을 계속 가면 된다. 학교 운동부의 긍정적인 교육적 기능이 동의된다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부 차원에서 학교 운동부에 대한 각별한 행재정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교장선생님이나 지도교사에 대한 인센티브도 반드시 부활해야 하며 자원이 부족한 학교 운동부의 효율적 육성을 위해 1교 1기, 그리고 1인 1기도 건강한 시민 양성 측면에서 재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2백 년도 한참 전인 1815년에 천하의 나폴레옹을 워털루 전투에서 끝장낸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워털루 전쟁은 이튼 스쿨의 운동장에서 이긴 것"이었다는 연설의 의미를 한번은 진지하게 되새겨보자.
(글 : 강신욱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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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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