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정의학과의원이상훈원장
삼성가정의학과의원이상훈원장
‘피아노의 시인’과 ‘여류 작가의 만남’은 한 편의 소설적 요소가 강했다. 스물일곱 살 남자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다. 예술의 삼매경에 이른 남자는 파리 귀족들이 찾는 살롱에 드나들었다. 출연료는 파리에서 단연 톱이었다. 그의 이름은 프레데리크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년)이었다. 고향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혼자 사는 젊은 총각이었다.

여자는 ‘돌싱’으로 소설가였다. 어린 두 아이의 엄마였다. 많은 남성과 염문을 뿌린 팜므 파탈이었다. 프랑스 남작의 아내였으나 별거와 이혼 후 여러 남자와 개방적 만남을 했다. 자유연애주의자인 그녀는 많은 작가, 예술가 등 지식인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했다.

지인들에게 쓴 편지가 무려 4만통에 이른다. 늘 사랑을 갈망한 그녀의 마지막 남자는 아들보다 두 살 어린 화가였다. 그녀의 이름은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년)다. 그녀가 쇼팽을 만날 때는 서른네 살이었다.

‘연상의 여인’과 ‘연하의 남자’, ‘자녀없는 총각’과 ‘두 자녀를 둔 돌싱’의 첫 시작은 쇼팽의 연주회 무대였다. 두 사람은 피아니스트와 작가로 인사했다. 그러나 공감대는 형성되지 않았다. 쇼팽은 성문화에 보수적이었다. 내성적이고, 고독을 즐기는 경향도 있었다.

반면 상드는 마음 맞고, 눈 맞으면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여성이었다. 사교계의 화려함을 즐겼다.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남장을 하고 사교클럽에 출입도 했다. 당시 사교클럽에는 여성의 출입에 일정 부분 제한이 있었다.

쇼팽은 너무 튀는 상드에 대해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반면 여러 남자를 사귄 경험의 상드는 쇼팽에게 고개를 흔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은근한 매력도 느꼈다. 첫 만남이 ‘물’과 ‘불’에 가까웠던 두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친밀해졌다. 초반과는 달리 쇼팽이 더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고, 1830년대 후반에 연인으로 발전했다. 쇼팽과 상드의 애정 관계는 10년간 계속되었다.

두 사람은 사회의 시선을 피해 몰래 사랑을 했다. 여행 때는 시차를 두고 다르게 출발하기도 했다. 상드는 오랜 기간 가족과 떨어져 외로워하는 쇼팽을 엄마처럼, 누나처럼 챙겨주었다. 쇼팽은 내면의 외로움을 살갑게 위로하는 여인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쇼팽은 상드와 만나면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모두 느꼈다. 그녀의 자유분방한 삶에 힘들어 하면서도 포근함을 느꼈다. 그의 가슴속에 숨어있던 보살핌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향수를 그녀가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쇼팽에게 상드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었다. 마음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모정의 여인이기도 했다. 감정적 도움을 받는 쇼팽은 상드의 어린 두 아이에게 정성을 쏟았다. 특히 딸 솔랑주를 친딸처럼 보살폈다.

두 사람의 성향은 전혀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정서적 공감대 형성 덕분이었다. 쇼팽의 전기를 쓴 프레데릭 닉스는 ‘쇼팽의 서정적 정서와 상드의 가슴에 담긴 시적 감성이 서로 끌림으로 다가왔다’고 적었다.

또 하나, 쇼팽은 상드가 해주는 집밥에서 가정의 평안함도 찾았다. 요리를 좋아한 상드는 가족을 위해 늘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전문가 뺨치는 요리실력을 지닌 그녀는 자신의 영지인 노앙 지역의 식재료를 바탕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때때로 프랑스의 다른 지역과 스페인 영국의 요리법도 응용해 집밥을 지었다. 그녀의 수첩에는 요리 레시피가 700여개에 이른다.

쇼팽과 상드는 스페인 마요르카 섬의 오두막에서 여러 달을 지냈다. 이때 쇼팽은 많은 작품 활동을 했고, 상드는 연인의 식탁에 푸짐한 음식을 올렸다. 그중의 하나가 마요르카 스푸다. 마요르카 전통 음식인 이 스푸에는 쇠고기, 돼지고기, 아티초크 등과 함께 양배추 토마토 등 다양한 야채가 들어간다.

음식은 사람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비만인 사람과 마른 체형의 사람과는 필요한 영양소가 다를 수 있다. 소화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좋은 음식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음식은 편안하게 먹는 게 가장 좋다. 마음이 넉넉한 상태에서 맛있게 먹으면 건강에도 좋다. 이런 의미에서 집밥은 건강에 아주 좋다. 집밥은 물리적 허기뿐만 아니라 심리적 허기도 달래주기 때문이다. 가족이 챙겨주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은 심리적 최고의 영양소라고 할 수 있다.

쇼팽은 고국 폴란드를 21살에 떠나 파리에 왔다. 타향에서 홀로 생활한 쇼팽에게 집밥을 지어주는 상드는 물리적 허기와 심리적 허기를 모두 치유해주는 마법사나 다름없었다. 불륜이라는 비난과 푸대접에도 쇼팽은 그녀와 10년간이나 정을 나누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상드의 빼어난 음식 솜씨와 따뜻한 집밥으로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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