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와 헨델은 서양 음악을 눈부시게 발전시켰다. 그 공로를 사람들이 찬미한 결과 어머니, 아버지 호칭이 부여됐다. 하지만 헨델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다. 남성 헨델이 어머니로 불린 이유는 ‘아버지’ 호칭이 바흐에게 이미 붙여졌기 때문이다.
음악의 아버지라는 바흐는 두 번의 혼인을 통해 20명의 자녀를 두었다. 반면 음악의 어머니라는 헨델은 방랑벽이 있었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그는 아예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높았다.
젊은 시절에는 호감을 느낀 이발소 주인의 딸에게 자작곡 악보를 선물하며 구애를 했다. 그러나 악보를 하찮게 취급하는 그녀를 보고 마음을 접었다. 헨델은 명예욕과 금전욕이 강했다. 돈과 명예에 타고난 체력까지 가진 그의 이성관은 건전하지는 않은 듯하다. 독신인 그의 사생활은 유부녀와의 스캔들 등 루머가 이어졌다.
그러나 사생활을 비밀로 남겨두는 관리형으로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거의 없다. 후대 연구가들이 그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다만 성격적으로 다혈질에, 격투를 하는 등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한 점은 많은 이가 공감한다.
굽어지지 않는 성격과 강한 물욕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렵게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천부적인 음악 재능이 있었다. 많은 비난과 풍파 속에서도 음악가로서 우뚝 섰다. 헨델 비문에는 ‘그는 시대를 뛰어넘는 가장 뛰어난 음악인이고, 그의 음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닌 감성의 언어’라고 묘사돼 있다. 인간의 열정을 담은 언어의 힘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음악인이라는 것이다.
극 음악 분야인 오페라, 오라토리오 등에서 큰 업적을 남긴 그의 유명세는 기악 음악인 왕궁의 불꽃놀이 초연 때 절정에 이른다. 영국왕 조지 2세의 요청으로 작곡된 이 곡이 처음 연주될 때 1만 2천명이 영국 궁궐 주변에 몰려들었다. 마차가 3시간 동안이나 막힐 정도로 교통 정체도 심했다.
완성도 높은 음악을 자랑한 헨델은 풍채도 좋았다. 얼굴이 포동포동하고, 아랫배가 블록 나온 비만이었다. 건장한 체구의 대식가인 그는 육류를 선호했다. 한 자리에서 4인분의 식사를 너끈히 했다. 헨델이 하루는 식당을 찾았다. 테이블 3개에 올릴 양의 주문을 했다. 주문을 받은 웨이터가 “함께 할 일행들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헨델은 “일행은 바로 나”라며 나온 음식을 모두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술도 좋아하고, 담배도 즐겼다.
말년의 그는 불운했다. 생로병사의 인간 고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차사고로 부상을 당한데 이어 백내장이 원인이 돼 실명까지 했다. 헨델은 실명 후에도 8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다가 1759년에 숨졌다. 향년 74세였다.
실명한 천재 작곡가에 대해 많은 사람이 가슴 아파했다. 오라토리오 ‘삼손’ 연주회에서 테너 가수 죤 바이트가 노래했다. "기막힌 어둠, 해도 달도 없네. 달빛을 암흑이 싸 버리네.“ 관객은 노랫말과 시력을 잃은 작곡가에 감정이입 됐다. 객석에는 눈시울 적신 이가 많았다.
헨델이 앓은 백내장은 노인에게 많은 안질환이다. 안구가 노화되면 눈의 수정체에 있는 단백질이 변성된다. 이 경우 수정체 투명도가 떨어져 시야가 흐리거나 왜곡돼 치료하지 않으면 실명에 이를 수도 있다. 백내장은 가족력과 함께 비만, 음주, 흡연 등도 원인이 된다.
살이 지나치게 찌면 신체의 산소조절 능력이 떨어진다. 이는 몸의 단백질 변성의 원인이 돼 백내장을 더 악화시키게 된다. 비만은 당뇨와도 밀접하다. 당뇨가 심하면 혈액이 끈적끈적해져 순환에 문제가 생기고 눈으로의 산소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이로 인해 안구 수정체의 단백질이 손상되면 백내장이 발생된다. 지속적인 흡연은 유해 화학물질 노출 가능성이 있다. 평소 렌즈 낀 상태라면 백내장 위험도가 증가될 수 있다.
당시 헨델은 한쪽 눈의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자 백내장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치료는 성공하지 못했고, 반대편의 눈도 나빠져 결국 앞을 보지 못하게 됐다. 이는 당시의 의료수준의 한계로 이해하고 싶다.
지금은 인공수정체 삽입 등 치료방법이 충분히 있다. 다만 헨델이 평소 섭생 관리와 다이어트 등을 했다면 백내장 위험도 낮아졌을 것이다. 또 백내장 수술 후에라도 음주와 흡연을 삼가고, 체중 관리를 했다면 어땠을까. 실명까지 악화되지 않고 더 많은 아름다운 음악을 후대에 남기지 않았을까.
(글 : 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하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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