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정의학과의원이상훈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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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는 누구일까. 190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마리 퀴리(1867~ 1934년)다. 방사능을 함유한 폴로늄과 라듐 발견 공로로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수상했다. 그녀는 1911년에는 화학상을 받아서 노벨상 2관왕이 됐다.

또 그녀의 딸인 이레네 퀴리와 사위인 졸리오는 인공방사성 원소를 최초로 발견했다. 이 덕분에 1935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2대에 걸쳐 한 가족 4명이 3개의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녀는 이례적으로 두 나라의 지폐에 초상이 새겨져 있다. 조국인 폴란드와 활동한 나라인 프랑스의 지폐다.

노벨상 가족 시대를 연 마리 퀴리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교육자였고, 가정은 화목했다.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의 간섭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러시아어를 사용해야 했다. 이에 반발한 그녀의 아버지는 직장을 잃고, 돈도 사기를 당해 생활이 어렵게 됐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집중력이 뛰어났고, 폴란드인의 정체성이 강했다. 그녀의 일화들이 한국의 교과서에 실린 적이 있다. 197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집중력에 대한 내용이 게재됐다. 늘 책에만 몰두하는 마리 퀴리를 친구들이 놀려줄 계획을 세웠다. 책을 읽는 그녀의 뒤에 책상과 걸상을 높이 쌓은 뒤 순간적으로 쓰러뜨렸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설치물이 무너졌다. 그러나 그녀는 한 번 뒤돌아봤을 뿐 책을 계속 읽었다.

1990년대 중학교 국어에는 정체성에 대한 글이 나왔다. 입헌왕국이던 폴란드는 러시아의 직할령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러시아 역사를 배우고, 러시아어를 써야 했다. 장학사는 불시 방문으로 교육상황을 확인했다. 학교를 찾은 러시아 장학사는 그녀에게 러시아 위인, 역사 등을 질문했다. 마리 퀴리는 유창한 러시아어로 장학사가 원하는 답을 했다. 그러나 장학사가 교실에서 나가자 그녀는 담임교사를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빼앗긴 조국, 남의 나라 언어로, 남의 나라 역사를 배우고 말해야 하는 슬픔에 구슬피 운 것이다.

공부를 잘한 마리 퀴리는 대학진학을 준비했다. 그러나 바르샤바대학은 남학생만 받았다. 여학생도 입학이 허가되는 프랑스 유학이 대안이었다. 문제는 유학 자금이었다. 그녀는 가정교사로 학비를 모았고, 23세에 프랑스 소르본대학교에 입학한다.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마리 퀴리는 결혼 후 남편과 공동으로 방사능 연구에 착수하였다.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했다. 방사성 원소 최초로 발견된 두 물질 덕분에 학계는 환호했고, 마리 퀴리의 연구는 새 방사성 원소 탐구의 기폭제가 되었다. 남편 사망 후 여성 최초로 소르본 대학 교수가 된 마리 퀴리는 라듐연구소를 세우고, 연구에 정진했다.

두 차례나 노벨상을 타고, 딸도 물리학자로 키운 마리 퀴리는 66세이던 1934년에 백혈병으로 숨졌다. 당시로서는 짧은 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연구 과정에서 줄곧 방사선에 노출된 탓인지 그녀는 말년에 악성 빈혈 등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마리 퀴리는 사후 61년 만인 1995년에 남편과 역대 위인들이 잠든 파리 팡테옹 신전으로 이장됐다.

마리 퀴리는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 두 사람은 1911년 브뤼셀에서 열린 물리학 회의에서 만났다. 석학 24명 중 마리 퀴리가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당시 불륜설 등으로 미디어에 부정적 기사가 실리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프랑스과학아카데미는 여성으로 폴란드 출신인 그녀의 후보 지명을 거부했고, 노벨상 수상을 위해 스톡홀름으로 가려는 그녀를 스캔들을 이유로 방해했다. 이때 아인슈타인은 편지로 위로했고, 그녀는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무렵에 아인슈타인은 그녀에게 질문을 했다.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면 안에 탄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이 궁금증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호기심 천사들에게 흥미로운 관심거리다. 엘리베이터의 추락 마지막 순간에 점프하면 충격을 피하지 않겠는가라는 의문이다. 결론은 물리학적으로는 헛된 희망에 불과하다.

독립심이 강한 마리 퀴리는 대학 시절에 배를 곯았다. 처음에는 결혼해 파리에서 넉넉하게 사는 언니 집에 머물렀다. 언니는 살뜰하게 동생을 살폈다. 그러나 언니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한 마리 퀴리는 독립을 했다. 가진 돈이 적었던 탓에 값싼 하숙집을 찾았다. 그녀는 난방이 열악한 방에 살았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빵 한 조각과 당근 한 개로 하루를 버티기도 했다. 급기야 영양실조로 쓰러졌다. 의사의 응급조치로 생명을 구한 그녀는 언니 집에서 영양보충으로 체력을 회복했다. 또 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음식을 잘 챙겨주는 하숙집으로 옮겼다. 영양실조는 에너지 소비가 흡수 보다 많은 경우에 생긴다. 잘 먹지 못하거나 위장관에서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일어난다.영양이 부족하면 체중감소, 피부와 머리카락 등의 푸석거림, 신경계 이상 등 다양한 증상이 수반된다.

그런데 비만인 사람도 영양결핍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지방은 많지만 단백질, 비타민 등이 부족한 탓이다. 영양결핍 초기에는 충분하게 영양을 보충해주면 회복이 된다. 마리 퀴리는 젊은 날 영양결핍이 있었으나 이후 잘 회복이 되었다. 그렇기에 말년까지 특이하게 마르거나 살찌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었다.

(글 : 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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