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셰프는 유래가 깊다. 음식이나 정치 발달사에서 보면 초기에는 셰프가 곧 고위 정치인이었다. 정치를 단순화 하면 먹거리 확보와 분배라고도 할 수 있다. 원시시대부터 사람들은 무리 생활을 했다. 연약한 인간은 야생의 동물과 싸우고, 먹거리를 얻기 위해 협동해야 했다. 먹거리를 많이 얻는 능력자 주위에 사람이 모였다. 지금이야 풍족한 음식으로 비만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음식이 곧 삶이었다.
능력자는 자연스럽게 우두머리가 되었다. 집단이 커지면서 우두머리는 씨족장, 부족장이 되었다. 집단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먹거리 분배가 제대로 되어야 한다. 그 일을 우두머리 혼자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때 1인자를 도와 사람들을 다스리는 2인자가 나타난다. 그가 바로 재상(宰相)이다. 임금을 보필하는 신하 중 최고 책임자인 재상의 역할 중 하나가 음식 장만이었다.
고대로 갈수록 하늘이나 조상에 지내는 제사가 중요했다. 재상은 제수 준비와 음식 분배 총괄도 했다.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에서는 그 직책이 천관총재天官冢宰)였다. 여기에서 발전한 게 재상(宰相)이다. 한자 뜻으로 재(宰)는 요리를 하는 자. 상(相)은 보행을 돕는 자다. 집안에서 시중드는 일의 절대량은 음식과 관련 있다. 요즘 시각으로 고대 부족국가 초기의 재상은 요리사인 셈이다.
그러나 재상은 군주의 단순한 노비가 아니었다. 역학 구도에 따라서는 군주의 스승이 되기도 했고, 부족장의 업무를 상당 부분 대신하는 존재였다. 셰프인 재상은 자연스럽게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펼쳤다. 그 결과 정치 행위에 대해 ‘국정을 요리한다’고도 표현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통치 행위를 작은 생선 요리로 설명했다. 기울어가는 회나라의 안타까움을 노래한 ‘시경(詩經)’의 ‘비풍(匪風)’에서는 나라를 잘 다스릴 인물을 요리사로 비유하고 있다. “누가 능히 생선을 삶을 수 있을까. 내 그를 위해 가마솥을 씻겠네.”
춘추시대의 민요집인 시경에는 후세인들이 풀이를 달았다. 비풍 부분에서는 ‘생선 요리 때 자주 뒤집으면 살이 쉽게 부서진다. 나라를 다스릴 때 번거롭게 하면 백성이 흩어진다. 곧 정치는 생선 요리처럼 하는 것’이라고 주석했다.
기록에 남는 첫 재상 요리사는 이윤(伊尹)이다. 중국 상고시대인 상나라의 개국공신인 그는 왕도정치를 실현한 인물로 손꼽힌다. 맹자는 이윤에 대해 “들에서 농사지었고, 요순의 도를 실천하며 산 인물”이라고 평한 뒤 ‘임성(任聖)’이라 호칭하였다. 임성은 세상의 문제를 자신의 잘못으로 삼은 성인을 뜻한다.
초야에서 농사를 지으며 홀로 도를 실천하던 이윤은 요순시대와 같은 이상사회 건설을 위해 현실정치에 나섰다. 그가 세상에 나선 과정에는 두 가지 설이 엇갈린다. 하나는 이윤의 명성을 흠모한 상나라 탕왕(湯王)이 다섯 차례에 걸쳐 출사를 간곡히 청했다는 이야기다. 인재 영입에 정성을 다하는 ‘오청이윤(五請伊尹)’ 고사의 배경이다.
또 하나는 이윤이 탕왕을 만나기 위해 요리사로 가장했다는 설화다. 이윤은 탕왕이 천하를 논할 큰 그릇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이에 탕에게 시집가는 유신씨의 주방 담당 하인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나온 설화가 ‘이윤부정(伊尹負鼎’이다. 이윤이 주방조리기구를 짊어지고 탕왕에게 간 것을 뜻한다. 그는 맛있는 요리를 매개로 해 탕왕과 가까워졌다.
이윤은 탕왕에게 정치를 요리에 빗대어 설명했다. 그는 탕왕에게 하나라 걸왕을 정벌해 천하의 백성을 구하라고 청했다. 한비자의 ‘난언(難言)’편에 의하면 이윤은 탕왕에게 70번이나 군사를 일으키도록 설득했다.
마침내 탕왕은 정벌군을 편성해 걸왕의 하나라를 멸망시켰다. 이윤은 하나라 정벌 때 생선의 가시를 바르듯 세심하게 계획을 짰다. 먼저, 하나라의 전력 탐색 차원에서 계속하던 조공을 중지했다. 이에 걸왕은 군사를 일으키려 했고, 이윤은 탕왕에게 다시 조공하게 했다. 때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조공을 중지했다. 이때는 폭정으로 내정이 뒤숭숭한 걸왕이 군사를 일으키지 못했다. 적의 상황을 안 이윤은 탕왕에게 정벌을 단행하게 건의했다. 천하의 제후들은 모두 걸왕을 버리고 탕왕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문헌상 첫 셰프 재상인 이윤은 이후 탕왕과 그의 아들이 태평성대를 이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글 : 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임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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