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미인대회는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게 아니다. 그중의 하나가 많은 사람과 거리가 있는 미녀들의 독무대라는 점이다. 또 대부분의 대회 참가자는 평균적인 키보다 훨씬 크고, 신체 비율도 7등신이나 8등신을 향하고 있다. 역시 보통 사람들의 신체 비율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한결같이 개미허리나 수양버들 허리 같은 날씬함을 드러내고 있다.
미인대회는 날씬하고 싶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마르고 날씬한 몸매가 아름답다는 인식을 부지불식간에 심어주고 있다. 상당수 사람은 더 날씬해지고, 더 예뻐지기 위해 운동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날씬한 8등신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전통시대에는 오히려 통통한 미녀가 더 각광 받았다.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은 다양하다. 사람마다 인식이 다르다. 그렇기에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인대회의 근원을 생각해도 그렇다. 미인대회 시작은 그리스 신화인 파리스의 심판(judgement of Paris)으로 볼 수가 있다. 트로이의 왕자인 파리스는 인간 중 가장 잘생긴 남자였다. 그는 신들의 왕인 제우스의 명령으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뽑는 판결을 한다. 대상은 전쟁과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미네르바), 신들의 여왕인 헤라(주노), 미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비너스)였다.
세 여신은 파리스에게 자신을 최고 여신으로 뽑아주기를 청하며 반대급부를 제시했다. 아테나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명예, 헤라는 부귀영화와 권력, 아프로디테는 지구촌 최고 미녀 제공을 각각 약속했다. 파리스의 선택은 감각적 쾌감의 미를 제시한 아프로디테였다. 파리스는 세상 최고 미인인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차지했다. 이에 헬레네를 되찾으려는 그리스인들과의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이것이 트로이전쟁으로, 파리스는 화살에 맞아 죽고, 나라는 망하게 됐다.
이 신화는 유럽의 많은 화가들의 작품으로 탄생됐다. L.크라나흐(Lucas Cranach), C.로랭(Claude Lorrain), P.P.루벤스(Peter Paul Rubens), F.부셰(François Boucher), G.F.워츠(George Frederick Watts) 등이다. 이들 작품에서 세 여신은 균형 잡힌 육감적이고 탄력적인 몸매로 표현됐다. 지금의 미인대회에 나오는 날씬한 여성상은 아니다.
사람이 끌리는 감각적인 아름다움도 다양하다. 복스럽고, 통통함에 매력을 느낄 수도 있고, 날씬한 수양버들 허리에 시선을 빼앗길 수도 있다. 그런데 눈길만 잡는 아름다움만 추구하면 참된 진리와 합리적인 판단을 놓칠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 여신들의 미인대회는 외모의 아름다움인 미(美)에 앞서 참된 진(眞)과 착한 행동인 선(善)이 우선됨을 말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영혼 3분설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플라톤은 영혼을 사유하는 능력인 이성,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혼재하는 기개, 헤아릴 줄 모르는 비합리적인 욕망의 결집으로 보았다. 그는 공부를 통해 이성은 지혜, 기개는 용기, 욕망은 절제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심미적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현대의 미인대회도 고대 그리스 여신들의 미인대회와 플라톤이 생각한 진리의 가치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 외모가 빼어난 사람을 선발하는 행사이면서도, 미(美)에 못지않게 선(善)을, 그리고 진(眞)의 아름다움을 알리려는 깊은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미인선발대회 1, 2, 3위 수상자는 미선진(美善眞)이 아닌, 진선미(眞善美)로 시상된다.
참된 아름다움은 날씬함도, 통통함도, 비만도 뛰어넘는다. 참된 아름다움은 헤아리는 마음과 나누는 행동이 아닐까.
(글 : 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임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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