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근대사의 큰 변곡점 중 하나가 프랑스대혁명이다. 전제 군주제를 타파하고, 민주주의에 한발 다가선 사건이다. 이 혁명의 동인에는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있다. 부부에게서는 과장된 소문의 희생양 느낌이 물씬 풍긴다.
당시 프랑스의 왕은 무능했고, 정책은 일관성이 없었다. 앞선 통치자들부터 누적된 재정적자도 심각했다. 설상가상, 라이벌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독립전쟁에 돈을 쏟아부었다. 나라 경제는 거의 파탄 지경이었다. 돈이 궁한 왕과 귀족은 세금 고삐를 더욱 당겼다. 1788년 대흉년으로 끼니를 걱정하던 시민들은 벼랑 끝으로 몰렸다.
생활고에 신음하던 그들은 분노가 극에 달했다. 착취세력에 대한 반감, 신분제에 대한 불만으로 봉기를 한다. 1789년 7월 14일,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들의 타깃은 무능한 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로 향했다.
절대 통치자인 왕 부부는 극히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 표적이 됐다. 왕은 대식가이고, 왕비는 향락가라는 소문이 돈 것이다. 반정부, 반왕정 투쟁 선봉에 선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게 많을수록 좋았다. 왕실의 사치 향락 소문은 정부 전복에 딱 좋은 콘텐츠였다. 왕실과 귀족의 무능과 살이 덧붙여진 사치 향락은 양날의 수레바퀴처럼 밀고 당기며 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사치 향락 소문의 일파만파 속에 작가들은 왕을 통통하게 살찐 모습으로 그렸다. 이름없는 많은 창작가들은 왕비를 망언의 장본인으로 만들었다.
루이 16세는 190cm가 넘는 거구다. 체구가 크면 식사량도 많을 수밖에 없다. 왕을 위한 음식은 넉넉하다. 나랏일을 하는 궁중에서는 고민거리가 많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식이 당긴다. 이것이 식탐 많은 대식가로 와전된 듯하다.
왕은 평소 족발을 좋아했다. 이 같은 섭생은 체포된 왕과 연관돼 확대 재생산된다. 왕은 혁명군을 피해 오스트리아로 탈출하다 잡혔다. 프랑스 요리 대사전에는 족발을 먹기 위해 시간을 지체하다가 체포된 것으로 서술돼 있다. 근거가 불명확한 소문이 실린 것이다.
루이 16세가 시민이 흥분할 정도의 대식가나 식탐가라는 근거는 미약하다. 오히려 젊은 날의 그는 소식을 했고, 식단도 단출했다. 몸이 마른 편이어서 루이 15세가 걱정할 정도였다. 젊은 날의 초상화는 비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식가와 비만왕 소문은 성난 시민들의 증오 자극에 부족함이 없었다. 훗날 혁명의 정당성 강조에 좋은 소재였다.
시민들은 왕비에 대해서는 더욱 적대적이었다. 그들은 왕비를 ‘오스트리아의 암탉’으로 표현했다. 권위를 지닌 왕비가 아닌 폄하와 조롱 대상이었다. 왕비는 프랑스와 대치하던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1792년 프랑스 혁명정부는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했다. 전황이 프랑스에게 불리했다. 화가 난 시민들은 감정의 화살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쏘았다. 그녀를 오스트리아의 첩자로 의심한 것이다.
특히 시민들은 ‘사치하는 왕비’를 지극히 미워했다. 왕은 왕비에게 작은 궁전인 프티 트리아농을 선물했다. 또 왕비는 많은 행사를 직접 주관했다. 이전의 왕비들과는 다른 행보였다. 이는 배고픈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결과가 되었다.
나라의 빈 곳간, 배고픈 서민의 이유를 궁중의 사치, 왕비의 향락으로도 돌렸다. 왕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뜬소문으로 확대된다.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 왕비가 배고픔에 아우성치는 시민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빵이 없음은 먹을 게 없다는 표현이다.
그런데 상황인식 없이 ‘고기를 섭취하라’고 했을까. 바보가 아닌 이상, 말할 수 없는 내용이다. 성난 시민의 공분을 증폭시키는 망언임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고기가 아닌 케이크와 브리오슈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고기든, 케이크든, 브리오슈든 마리 앙투아네트의 발언 진위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는 그녀를 비난하기 위해, 조롱하기 위한 악의적 헛소문 가능성도 시사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왕과 왕비는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백성의 손에 참형된 슬픈 운명의 왕과 왕비가 떠난지도 200년이 훌쩍 넘었다. 또 지난날 일방적인 시각과 다른 재평가도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비만왕과 사치의 왕비라는 오명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사람은 이성적이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면이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도 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이야기,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과연 무엇을 믿고 싶을까.
(글 : 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임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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