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거대담론이 이상향이라면 개인의 원초적 바람은 신(神)으로 묘사된다. 인간의 영원한 테마는 사랑이다. 사랑받고 싶고, 예뻐지고 싶다. 그 바람이 ’사랑의 여신‘ 비너스로 탄생했다. 사랑받고 싶은 여인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사랑과 미의 여신은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프로디테, 로마 신화에서는 비너스다. 두 여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비너스로 동일시 되었다.
여성의 로망인 비너스는 헬네니즘 시대에 황홀한 예술 작품으로 빚어졌다. 대표적인 게 밀로의 비너스상이다. 8등신 미녀로 조각된 작품에는 1:1.618의 황금 비율이 적용되었다. 당시 미녀관이 지금과 비슷했음을 알 수 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고대 그리스 문화가 중동과 서남아시아 세계와 접촉하면서 문화융합이 일어났다. 그리스와 로마인의 상상속 비너스에 보다 넓은 세계적 가치관이 반영된 셈이다. 그 모습이 8등신 미녀이고, 인체의 황금비율이었다.
그러나 비너스의 원초적 모습은 풍만함이었다. 날씬하게 균형잡힌 S라인이 아니었다. 넉넉하다 못해 풍만하고, 풍만하다 못해 비만한 여신이었다. 고대인에게 아름다움은 통통함이었다. 풍만한 여성의 육체를 찬미하였다. 가녀린 허리보다는 두툼한 살집에서 생산의 욕망을 느꼈다. 삶의 조건인 다산(多産)과 풍요(豊饒)의 시대 상징성이 반영된 것이다.
구석기 시대의 작품인 발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는 만삭의 여인처럼 풍만하다. 풍요와 생산의 지극한 염원을 담은 듯, 성기와 유방이 크게 과장 부풀려졌다. 언뜻 보면 출산이 임박한 여인과도 비슷하다. 풍만해서 또 다른 농염함으로 다가오는 발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출산의 비너스‘로도 불린다.
큰 가슴과 엉덩이가 포인트인 이 작품은 1908년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에서 나온 여자 인형이다. 발견된 곳은 홍적세 황토층이다. 홍적세는 약 200만 년 전에서 1만 년 전 사이다. 인류가 나타난 구석기 시대에 해당된다. 학자들은 여자 인형이 대략 2만년 전에서 3만년 전 사이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럽 구석기 시대를 상징하는 이 조각상을 발견자들은 독일 인류학회에 다음처럼 보고했다.
‘전체 길이는 11.1cm이다. 커다란 유방, 불쑥 튀어나온 복부, 통통한 둔부와 넓적다리가 있다. 머리카락은 소용돌이 모양으로 칭칭 감아 머리 위에 올려져 있다. 소음순이 정확하게 표현돼 있다.’
조각상에 대한 풀이는 다산과 풍요에 맞춰졌다. 얼굴의 이목구비가 수려하지 않고, 복부는 초고도 비만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지나치게 뚱뚱한데, 성기는 도드라지게 표현했다. 이처럼 과장된 상징은 당시인의 염원이 담긴 것이다. 당시인들에게 롤 모델, 즉 최고의 연예스타였던 셈이다. 그렇기에 현대적 미의 관점에서 거리가 멀지만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건강한 여인이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다. 또 지방질이 많아야 추위를 이겨낼 수 있다. 당시 남자들은 종족 보존 본능 차원에서 가슴과 엉덩이가 풍만한 여성에게 강한 끌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때 당시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상이었던 것이다.
풍만한 여성에 대한 그리움은 한줄기 흐름으로 계속됐다. 르네상스 시대를 산 이탈리아의 화가 보티첼리의 작품에 비너스가 있다. 그는 해안가에 도착하는 아프로디테(비너스)를 통통한 미녀로 그렸다. 통통함과 뚱뚱함은 비만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건강 미인으로도 인식됐다. 아름다움은 두뇌의 작용이다.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아름다움은 달라진다. 두꺼운 S라인을, 가녀린 S라인보다 더 매력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조금 통통하다고 자신감을 잃지 말자. 그럴수록 더 꾸미고 자신있게 표현하자. 미는 시대상과 관점의 차이일 뿐이니까.
(글:삼성가정의학과 이상훈 원장)
임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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