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운동장 주변은 이미 양교 응원단의 함성과 졸업생들로 인해 열광과 흥분의 도가니였다. 70, 80대 노선배들이 스탠드에 가득했다. 배재고등학교는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 합시다" 열창하고, 양정고등학교는 "가르치는 이 배우는 이 한 가지 힘씀이 다만 올바름"이라고 목이 터져라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교가를 부른다. 3~4 시간 내내 말이다. 멋진 장면이다. 모교인 배재를 졸업한 지 50년이 다 돼가지만 양교 교가를 부르고 들을 때면 여전히 얼굴이 상기되고 가슴은 요동친다.
말이 그렇지 요즘 같은 현실에서 67년간 15인제 럭비 정기전을 유지한다는 게 쉬운 일인가? 배재의 경우 농구, 야구, 축구부도 운영하고 양정의 경우 농구부도 운영하지만 럭비부를 그것도 중고 모두에서 육성한다는 것은 학교 체육 현장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분명히 뭔가 있다. 전통적인 애교심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경기 당일 상대 학교 선수들이 경기 후 응원단에 인사하러 왔을 때 상대 학교 교가를 떼창 하는 장면에는 감동 이상의 무엇인가 있다.
근래 경기도 수원에 있는 중학교가 선수를 충원하지 못해 결국 하키부를 해체한다고 한다. 서울의 축구 명문 고등학교는 학내의 다른 문제로 축구부를 정리한다고 들린다. 한전은 만성적인 경영 적자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럭비부를 해체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전국 여기저기서 학교 운동부가 해체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선수 수급이 어려워 학교 운동부의 존치가 흔들리는 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으나 경영 문제, 심지어 일부 지도자나 다른 운동부의 문제 때문에 교내 운동부 전체를 흔드는 것은 결코 교육기관, 그리고 교육자 답지 못하다. 한전 같은 공공기관의 경우도 경영상의 이유로 인지 종목은 놔두고 비인지 종목인 럭비부 해체를 운운하는 것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학교든 기업이든 경영자들이 평소 선수와 지도자를 구성원의 진정한 일원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학교 운동부 수는 축구, 야구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종목에서 10여 년 전부터 반 토막 나기 시작했다. 공공기관을 비롯해 사기업의 경우도 운영 경비를 턱없이 줄이고 운동부 없애기를 식은 죽 밥 먹듯 했다. 늘 선수 부족, 문제 발생, 경비 절감 등이 주된 이유였고 과거와 달리 학교나 기업의 이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경영자들이 인식하기 때문인 듯하다. 모두가 외적이고 부정적인 현상에만 탓을 돌리는 편협한 인식이다. 학령 인구 부족이나 폭력, 부정 등 학생들의 제반 문제는 운동부에 국한되지 않는 교육기관의 전반적인 문제다. 운동부로 인해 학교나 기업의 재정이 흔들리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고 엄살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리고 위 양정과 배재 학교의 럭비 정기전에서 보듯이 운동부로 인해 구성원들이 얻는 진정한 이익에 대해, 그 잠재적인 이익에 대해 일부 경영자들은 무지하거나 애써 무시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운동부 주변에는 문제가 늘 있어 왔다. 인적, 물적, 제도적 문제는 분명히 지금 이 시간에도 학교와 기업의 운동부에 존재한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고 이웃 일본이나 중국뿐 아니라 소위 스포츠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과 영국의 경우에도 있다. 청소년들이 이전처럼 운동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힘든 훈련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지 대한체육회와 교육청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선수와 지도자들이 어떻게 존경받고 있고 이로 인해 학교와 기업의 운동부가 어떻게 활성화되고 있는지 면밀히 주목해야 한다. 어려운 환경에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니거나 우격다짐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학교와 교육청, 그리고 지역사회의 기업이 지혜를 모으면 답이 보인다. 툭하면 남 탓하지 말고 엄청난 자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선수와 지도자에게는 물론이고 미래 사회에 필요한 집단 지성이 운동부를 통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지 체육계와 교육계 지도자들은 역사적, 사회적 비전을 간직할 필요가 있다.
(글 : 강신욱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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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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