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편에는 다이어트 천국이 펼쳐진다. 너도나도 살을 빼려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닌다. 이 약 저 약을 먹기도 한다. 몸매관리를 위해 1일 1식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포털에는 다이어트 광고가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
옛 철학자가 오늘의 극단적인 현상을 보면 어떤 말을 할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에피쿠로스(Epikouros)는 너무 많이 먹는 것에 대해 손을 내저었다. 극단적인 식이요법도 반대했다. 그의 철학은 최소의 쾌락을 통해 최고의 쾌락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는 음식에 대해 상징적인 표현을 했다. “빵과 물만 있으면 신의 삶도 부럽지 않다!” 가벼운 식사를 이야기 한 것이다.
예수가 태어나기 300년 전의 인물인 에피쿠로스(BC 341~BC 270년)는 지중해의 사모스 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18살에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해 교육의 도시인 아테네로 이주했다. 당시 아테네는 교육과 철학이 용광로처럼 융합되는 거대한 학교였다.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활동했고, 사상계에 큰 영향력을 미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철학자들이 세운 학교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기존 학자들의 사상 일부에는 동조하고, 일부에는 고개를 흔들었다. 최종적으론 ‘나의 스승은 나 자신’이라고 했다.
이는 당시 사회 흐름과 무관치 않다. 이 무렵은 헬레니즘 시대였다. 마케도니아에 점령된 그리스에는 다양한 외국 문화가 유입됐다. 시민들은 도시국가들의 몰락으로 인해 안전을 사회 시스템에 기대기보다는 자구책을 찾아야 했다. 도시국가 시절의 덕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로 잘 표현된다. 시민의 안전은 도시국가가 어느 정도 보장했다. 사람들은 폴리스의 구성원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면 됐다.
그러나 폴리스의 몰락은 사회 혼란을 가져왔다. 기존의 도덕과 정의를 명분으로 한 가치관과 철학적 사유의 관점도 변할 수밖에 없었다. 철학의 주된 흐름은 자연스럽게 삶의 방법에 대한 사색으로 바뀌었다.
에피쿠로스는 심신이 안정된 쾌락의 삶을 주장했다. 사회적 명분에 종속된 인간이 아닌, 개인의 행복 관점에서 삶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는 신(神)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미신이나 그릇된 믿음이 아닌가를 자문했다. 인식의 전환을 통해 막연한 죽음과 신의 공포를 벗어나는 행복을 추구했다.
그가 생각한 행복은 평온함으로, 자율적인 심신이 지극히 안정된 아타락시아(ataraxia)다. 이는 욕망에 흔들리지 않고, 고통도 없는 상태다. 이를 쾌락으로 여겼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좇는다. 바람직한 삶은 고통을 줄이고, 쾌락을 늘리는 것이다. 쾌락은 욕망을 성취하는 데서 얻어진다.
그런데 욕망이 쾌락을 고통으로 바뀌게도 한다. 어떤 쾌락은 증가할수록 고통이 커진다. 에피쿠로스는 진정한 행복인 아타락시아는 고통 없는 쾌락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욕망을 세 종류로 보았다. 먼저,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 해결에 대한 것이다. 다음, 버려도 되는 욕망이다. 보다 좋은 집에서 살고, 보다 맛 있는 음식을 먹고, 보다 비싼 옷을 찾는 행위다. 마지막으로 발목을 잡는 욕망이다. 허황된 명성과 신기루처럼 무너질 인기를 얻으려는 희망이다.
생존에 필수인 생리적 욕구는 채워지면 만족이 된다. 반면 버려야 할 욕망과 허황된 욕망은 채울수록 더 큰 만족을 원하게 된다. 이는 고통의 시작이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의 상태를 없어도 되는 욕망을 버리는 데서 찾았다.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고통이 없고, 지극히 심신이 평온한 상태가 된다.
생명체인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은 성 욕구와 음식 욕구다. 그는 지나친 성관계, 지나친 음주와 과도한 식사는 모두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으로 보았다. 진정한 쾌락인 몸과 마음이 평온한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에피쿠로스는 30대에 친구들과 정원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했다. 음식은 생존에 필요한 정도로 만 만족했다. 빵 한 조각과 약간의 포도주, 그리고 물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가를 실험했다. 검박한 삶을 산 그의 음식관은 단순하고 소박한 식사다. 그렇다고 극단적인 금욕주의는 아니다. 그저 고통을 야기할 정도로 지나치게 먹지 않는 것일 뿐이다.
소비 미덕 시대, 먹방 전성시대에 사는 현대인은 과식과 폭식 위험에 노출돼 있다. 과식과 폭식은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고 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잦은 다이어트는 영양결핍 위험이 있다. 가장 좋은 식습관은 하루 두끼나 세끼를 정량으로 먹는 것이다. 또 가끔은 맛있는 것에 손이 계속 가는 것은 인간적이다. 모든 사람이 에피쿠로스처럼 소박한 식사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글 : 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하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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