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의 고속성장은 리콴유(李光耀 1923~2015년)의 리더십과 연관이 깊다. 싱가포르의 국부로 불리는 리콴유는 혈통적으로 한족의 일파인 객가인(客家人)이다. 중원에 살던 객가인은 전쟁이나 사회 혼란을 피해 중국대륙 남쪽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등으로 상당수가 이주했다.
난민인 이들은 생존력이 무척 강했다. 중화권의 유대인으로 불릴 정도로 억척스럽게 일한 이들은 점차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루었다. 자연스럽게 교육 기회도 많아지는 가운데 이주 지역의 지도층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늘었다.
리콴유는 고조부가 광동성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3대째 영국령 싱가포르에 살던 리콴유의 아버지 리친쿤은 부유한데다 교육수준도 높았다. 영어에 능통한 리친쿤은 아들에게 영어 이름을 해리(Harry)로 지어줬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집안에서 자란 리콴유는 두뇌도 비상했다. 명문인 래플스 칼리지에 수석 입학을 했고, 졸업성적은 싱가포르를 포함한 말레이연방 전체 2등이었다. 수석은 훗날 아내가 되는 콰걱추(柯玉芝)였다.
그는 영국의 정책에 순치된 유소년기를 보냈다. 그의 생각이 바뀐 것은 1941년 태평양 전쟁 때다. 일본이 영국을 물리치고 싱가포르를 점령했다. 백인인 영군군이 황인인 일본군에 무너지는 모습을 본 리콴유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리게 된다. 싱가포르의 미래를 영국에 의존할 수 없음을 느낀다. 전쟁이 끝난 뒤 영국의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와 케임브리지대에서 공부한 그는 귀국 후 정치 활동을 한다.
싱가포르 운명도 요동쳤다. 1959년 영연방 자치령, 1963년 말레이시아연방, 1965년 독립으로 급변했다. 리콴유의 자서전에 의하면 그는 일생에 거쳐 4개 나라 국가(國歌)를 불러야 했다. 신이여 여왕을 보우하소서(영국), 기미가요(일본), 나의 조국(말레이시아), 전진하는 싱가포르(싱가포르)다.
자치정부 때부터 총리를 지낸 리콴유는 독립 후에도 26년간 국가 최고지도자로 도시국가를 통치했다. 그는 이 기간에 민족적 갈등을 잠재우며, 인구 300만명의 싱가포르를 세계적인 공무원 청렴 국가, 세계적인 금융과 물류의 중심지로 변화시켰다. 리콴유는 1990년 총리에서 물러났으나 2011년까지 2004년까지 선임장관(Senior Minister)과 고문장관(Minister Mentor)을 맡았다. 그의 영향력은 사실상 91세로 숨진 2015년까지 지속됐다.
20세기의 업적 많은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우생학적 정책을 펼쳤다. 발전을 위한 명분으로 여러 분야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명백한 반인권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를 싱가포르 발전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합리화했다. 경제학자 파레토는 소득과 생산의 ‘80:20’ 통계 법칙을 발표했다. 유럽제국을 조사한 결과 상위 20%가 전체 부(富)의 80%를 갖고 있다는 통계다. 상위 20%가 매출 80%를 창출한다는 시각이다.
리콴유는 10% 법칙을 생각했다. 상위 10%에게 집중투자해 사회발전을 이끈다는 전략이다. 교육을 상위 10%에 집중투자함으로써 엘리트를 양성했다. 그 결과 싱가포르 국립대학은 세계대학 랭킹 10위안에 드는 명문으로 성장했고,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경쟁력이 높아졌다. 나라의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햄버거나 피자 같은 패스트 푸드와 정크 푸드 섭취 또한 늘었다. 비만 청소년도 증가했다. 이에 리콴유는 학교에서의 탄산음료 판매를 금지시켰다. 또 성인들에게는 담배의 해악을 들어 1960년대에 사무실 내 금연을 명령했다.
리콴유는 스스로 건강하게 살기 위한 노력을 했다. 식단의 간소화와 운동 그리고 계속된 두뇌훈련이었다. 그가 좋아한 음식은 싱가포르 전통 샐러드인 로작, 국수인 미시암, 꼬치 요리인 사테였다. 특히 나이가 들어서는 육류를 줄이고, 설탕을 넣지 않은 무가당 두유를 즐겼다. 식단은 소화에 무리가 없는 죽과 생선 등으로 구성했다. 아침은 케이크 한 조각, 코코아 한 컵, 유청(乳淸) 단백질 드링크로 마무리했다. 점심은 유동식인 치킨 수프와 두부를 먹었다.
이와 함께 아침에는 15분 정도 러닝머신을 뛰었고, 저녁에는 1시간 가깝게 수영을 했다. 하루 두 갑씩 피우던 담배는 이미 중년에 끊었다. 또한 늘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語) 3개 언어로 된 신문을 읽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은 중국어 개인 과외도 받았다.
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되는 리콴유. 그의 정치적 성공 요인 중 하나는 91세까지 장수한 삶이었다. 그의 식단과 운동, 두뇌훈련은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중노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 : 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하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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