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입장에 따른 엇갈린 반응 ... 한의계·간호계 환영, 의료계 투쟁예고

대법원대법정(출처.대법원홈페이지)
대법원대법정(출처.대법원홈페이지)
한의사 초음파 기기 사용이 위법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의료계에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판례를 깬 판단으로, 오랜 논란인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의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의료계 각 단체마다 입장에 따라 엇갈린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해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한의사 A씨에 대해 1·2심의 유죄 판결을 깨고 무죄취지로 원심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발전한 현대과학기술과 교육 등으로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하는 것이 통상적 수준 이상의 위해가 생기지 않는다”는 점과 “국내 한의과대학 의료기기 사용 관련 교육과정은 지속적으로 강화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의계·간호계 환영, “현대진단기기 사용 확대되야”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오랜 숙원인 한의계에서는 환영읠 뜻을 표했다. 같은날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의학의 과학화는 한의학이 새로운 의료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라 한의학 발전의 자연스러운 단계”라며 “한의사의 현대 진단기기 사용 제한이라는 족쇄를 풀어줄 단초가 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국민의 진료선택권을 보장하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간호사의 진단기기 사용을 바라는 대한간호협회도 이번 대법원의 판단에 찬성의 뜻을 밝혔다. 간협은 23일 논평을 내고 “의료행위의 가변성, 과학기술의 발전, 교육과정·국가시험의 변화, 의료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의료법상 자격을 갖춘 한의사가 현대과학 기술 발전의 산물인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판결로 한의사는 물론 치과의사, 조산사, 간호사 등 다른 의료인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판단기준이 제시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의협 등 의학계 간력 반발 .. 1인 시위 및 공정성 시비도

하지만 의학계는 격렬한 반대를 표하며 투쟁을 예고했다. 대한의사협회는 23일 성명을 내고 “의료법상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라며 대법원의 판단을 규탄했다.

의협은 “초음파 진단기기 진단은 영상 현출과 판독이 일체화되어 있기에 검사자의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의료행위로서, 단지 초음파가 인체에 무해하므로 초음파 진단기기가 안전하다는 것은 극히 단편적이고 비전문적인 시각”이라며 “현행법에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적시되어 있음에도 대법원이 의료직역의 축적된 전문성과 경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면허의 경계를 파괴해 버리는 내용의 판결을 내렸다”고 비난했다.

의협은 “한의사들이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빌려 의과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등 면허범위를 넘어서는 무면허의료행위를 지속적으로 시도한다면, 이를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는 불법의료행위로 간주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총력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1인 시위에 나섰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23일 대법관들 출근 시간에 맞춰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임 회장은 “한의사 초음파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걸 판결 근거로 삼은 것이 아니라 '사용해도 된다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걸 근거로 판결해야 한다”며 “맹장염이나 장중첩증을 오진하면 아이들은 복막염과 패혈증으로 단시간 내 죽어갈 텐데 이것이 대법원이 말하는 ‘보건위생상의 위해가 없다’는 것인가”고 반문했다.

대법관의 공정성에도 시비가 걸렸다. 임현택 회장은 “전원재판부의 노정희 대법관의 남편이 한의사라 이해관계 충돌이 명백한데도 이번 재판에 참여했다”고 꼬집었다.

그간 한의사 등 다른 의료인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이 몇 번 마련되었으나 번번이 의료계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만큼, 이번 대법원 판단의 후폭풍도 격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문제는 2014년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보건의료 선결과제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규제 철폐를 선정했다. 하지만 의협 등 의학계의 반발 등으로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20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이 의료기관 개설자가 한의사일 경우 진단용 방서선 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계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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